
[신민정 국장]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깊은 슬픔이다. 그러나 그 슬픔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유가족은 또 하나의 현실과 마주한다.
바로 장례비용이다.
한국에서 장례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1000만~2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준비해야 하는 비용으로는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실제로 장례비용이 경제적 부담이 된다고 느끼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드러난 사실은 이 비용이 단순히 장례 절차나 서비스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 사이에서 오가는 ‘리베이트 구조’가 장례비 상승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 데려오면 70만원”… 장례식장의 리베이트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적발한 사례는 이러한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병원 장례식장은 장례지도사들에게 유가족을 알선받는 대가로 건당 70만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은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약 3년 가까이 이어졌고, 지급된 금액만도 총 3억4000만원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로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겉으로 보면 사업자 간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 비용의 출처다. 결국 비용은 유가족에게 돌아간다.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은 대부분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
장례식장이 장례지도사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한다면 그 비용 역시 장례서비스 가격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장례비를 부담하는 유가족이 간접적으로 그 비용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러한 행위가 장례비용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장례비가 왜 이렇게 비싸지”라고 느꼈던 그 가격 속에 리베이트 비용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장례지도사의 추천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리베이트 구조의 또 다른 문제는 장례서비스 선택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례지도사는 유가족에게 장례 절차를 안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부분의 유가족은 장례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장례지도사의 조언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정 장례식장을 이용할 경우 금전적 대가가 지급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장례지도사는 유가족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안내하기보다 자신에게 금전적 이익이 되는 장례식장을 우선적으로 추천할 유인이 생긴다. 문제는 유가족이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추천이 객관적인 정보인지, 아니면 금전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인지 판단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빈소 50% 할인’이 던지는 질문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해당 장례식장은 리베이트 수수를 거부한 장례지도사가 유가족을 데려올 경우 빈소 가격을 50% 할인해주는 혜택을 제공했다. 겉으로 보면 유가족에게 유리한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애초에 장례식장 이용료가 충분히 높은 가격으로 책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할인도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리베이트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더 낮은 가격으로 장례서비스가 제공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장례시장의 특수성
장례서비스 시장이 다른 소비 시장과 다른 점은 ‘시간’과 ‘감정’이다.
대부분의 소비는 비교할 시간이 있다. 소비자는 여러 상품을 비교하고 가격을 따져본 뒤 선택한다.
하지만 장례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직후 몇 시간 또는 하루 안에 장례식장, 장례 절차, 장례용품 등을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유가족은 극도의 슬픔과 혼란 속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격을 비교하거나 조건을 따져볼 여유가 거의 없다. 그래서 장례서비스 시장은 소비자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시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장례비 부담, 이미 사회문제
장례비 부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논쟁거리였다. 일부 조사에서는 장례비용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적지 않다는 결과도 나왔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장례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 단기간에 큰 금액이 지출되기 때문에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여기에 장례용품 비용, 음식 비용, 상조회사 상품 등이 더해지면 실제 지출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베이트 구조까지 존재한다면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장례서비스 산업 전체의 신뢰 문제
물론 장례서비스 산업 전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많은 장례지도사들이 유가족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장례식장 역시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문제는 일부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가 산업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5개 권역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이러한 관행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면 장례서비스 시장의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투명성이 해답이다
전문가들은 장례서비스 시장의 가격 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 이용료 △장례용품 가격 △장례지도사 서비스 비용 등을 명확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다.
가격 정보가 공개된다면 유가족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장례지도사의 윤리 기준을 강화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의료 분야에서는 의사가 특정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받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장례서비스 역시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 길만큼은 존엄이어야 한다
장례는 남겨진 사람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비용이나 거래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추모의 의미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슬픔 속에서 치러지는 장례가 누군가의 이익 구조 속에 놓여 있다면 사회적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단순히 한 장례식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장례문화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
이제 질문을 던질 때다.
우리가 치르는 장례비용은 과연 합리적인 가격일까. 그리고 그 비용 속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거래가 숨어 있을까.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길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진정한 추모와 존엄의 공간이 되도록 장례서비스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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