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편제 수궁가 계승자에서 문화유산 전승자로…후학 양성·문화봉사까지 이어가는 ‘우리 소리의 힘’
- “판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예술…전통의 뿌리 끝까지 지켜가겠다”

[선데이뉴스신문=신민정 기자]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시대 속에서도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예술이 있다. 바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예술 판소리다. 그리고 그 깊은 울림의 길을 평생 한결같이 걸어온 소리꾼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준문화재 정옥향 명창이다.
정옥향 명창은 화려한 기교나 무대 연출보다 오롯이 ‘소리의 힘’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며 한국 전통 판소리의 정통 맥을 지켜온 대표적인 명창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계보를 잇는 동편제 명창으로서 후학 양성과 전통문화 보존, 지역사회 문화봉사 활동에도 힘써오며 우리 소리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예술인의 길을 넘어 시대 변화 속에서도 전통을 지켜낸 한 인간의 치열한 기록이자, 우리 문화유산을 향한 헌신의 역사로 남고 있다.
“소리와 함께한 평생”…판소리에 삶을 바치다
판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노래와 이야기, 몸짓과 감정이 하나로 어우러진 한국의 대표적인 서사예술이다. 단 한 명의 소리꾼이 긴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오랜 수련과 깊은 정신력이 요구된다.
정옥향 명창 역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소리 재능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전통 소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반복 훈련과 혹독한 발성 연습을 견뎌야 한다. 목이 터지고 피가 맺혀도 소리를 이어가야 하며, 한 구절의 사설에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정 명창은 그런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다. 오랜 세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소리에 바치며 깊이 있는 성음과 정통 판소리의 본질을 다져왔다.
그는 양암 정광수 명창의 수제자로, 유성준에서 정광수로 이어지는 동편제 판소리의 정통 계보를 이어받았다. 동편제는 웅장하고 힘찬 성음,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특징으로 하는 판소리 유파다. 화려한 기교보다 소리 본연의 깊이와 진중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옥향 명창은 이러한 동편제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아 자신만의 소리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그의 수궁가는 깊은 울림과 섬세한 감정선, 탄탄한 발림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해학과 풍자의 미학 ‘수궁가’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인 수궁가는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려는 자라와, 위기를 재치로 극복하는 토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는 흥미로운 우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삶의 지혜와 풍자가 녹아 있다. 때문에 수궁가는 단순한 발성 기술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작품으로 꼽힌다.
정옥향 명창은 오랜 세월 수궁가를 수련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해왔다. 토끼의 익살과 재치, 자라의 충직함, 용왕의 절박함을 세밀하게 풀어내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선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끌어내며 관객의 삶과 감정을 움직인다.
공연을 본 관객들은 “소리 하나에 인생이 담겨 있다”, “판소리가 이렇게 깊은 감동을 줄 줄 몰랐다”, “가슴이 먹먹해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진짜 명창의 길”
정옥향 명창은 수궁가뿐 아니라 춘향가·심청가·흥보가·적벽가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익힌 완창 명창이기도 하다.
완창은 판소리 한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소리하는 공연 형식으로,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 이상 이어지는 고난도의 무대다.
긴 호흡과 체력은 물론 감정 몰입, 사설 전달력, 극의 흐름을 끌고 가는 역량까지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완창은 소리꾼에게 있어 최고의 경지로 평가된다.
정 명창은 수많은 완창 발표회를 통해 판소리의 진수를 대중에게 선보여 왔다. 그는 “판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철학 아래 화려한 기교보다 진정성과 감정 전달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의 소리가 오랜 시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삶의 희로애락을 소리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전통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후학 양성에 바친 열정
정옥향 명창은 무대 위 예술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전승교육사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전통문화 계승에도 힘써왔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전통예술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정 명창은 “전통은 시대가 변해도 반드시 지켜야 할 문화의 뿌리”라는 신념 아래 젊은 국악인들에게 판소리의 기본과 정신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음정과 장단만 가르치지 않는다. 소리를 대하는 태도와 예인의 마음가짐, 인간에 대한 이해까지 함께 전하려 노력한다.
제자들 사이에서는 “무대보다 사람됨을 먼저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 명창은 “좋은 소리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진짜 감동을 줄 수 있다”며 “판소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원형 잃으면 뿌리도 사라진다”…전통문화 보존의 길
정옥향 명창은 국악로문화보존회와 양암원형판소리보존연구원 활동 등을 통해 전통 판소리 원형 보존에도 힘써왔다.
최근 전통예술계에서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이유로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 명창은 “원형을 잃으면 결국 전통의 정체성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통 판소리의 기본과 본질을 지켜야 미래 세대도 제대로 된 소리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은 공연과 교육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화려한 연출보다 소리 자체의 힘에 집중하고,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판소리 본연의 감동을 전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공연장 밖에서도 이어지는 ‘소리 봉사’
정옥향 명창의 활동은 무대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복지관과 경로당, 지역 행사 등을 찾아다니며 어르신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공연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는 “문화예술은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 아래 지역사회 문화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판소리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익숙한 우리 가락이 삶의 추억과 감정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정 명창은 “어르신들이 ‘소리를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손을 꼭 잡아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우리 소리의 가치
정옥향 명창은 해외 문화교류 무대에서도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K-팝과 드라마 중심의 한류 열풍 속에서도 그는 “진정한 한국 문화의 뿌리는 전통예술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해외 공연과 문화교류 행사에서 판소리를 소개하며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을 세계인들에게 전달해왔다.
정 명창은 “판소리는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전달되는 예술”이라며 “우리 소리에는 인간의 삶과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옥향 명창은 최근 ‘한국을 빛낸 사회발전대상’ 전통문화공헌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전통 판소리 계승 활동과 후학 양성, 문화봉사, 전통문화 보존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특히 상업성보다 정통 판소리의 원형과 정신을 지켜오며 시민들에게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려온 점이 높이 평가됐다.
정 명창은 “평생 지켜온 우리 소리를 인정받아 감사하다”며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판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소리”
정옥향 명창은 인터뷰 말미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짜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눈물과 기쁨, 삶과 희망이 담긴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제대로 된 소리를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끝까지 무대에 설 것”이라며 “판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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